국내정치, 혹은 국가 간 전략경쟁?: 보호무역의 정치경제학 연구의 초점과 향방
1. 서론: 2025년 상호관세 정국
2016년에 무역과 이민에 대한 선거 캠패인을 적극 활용하여 당선 되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에 재집권 했을 당시 많은 국제무역 분야 경제학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가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무역장벽을 정책수단으로서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것을 여렵지 않게 전망했다. 하지만 2025년 4월 2일, 미국 행정부의 행정명령을 통해 국가별 상호관세가 구체화 되었을 때, 상호관세 도출식과 개념, 그리고 그 대상 국가의 범위는 학계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2
미국의 행정명령은 대상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일관된 논리에 기반하여 상정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상호관세 도출식을 명시했다. 도출식의 구조를 요약하자면, 수입탄력도 및 수입가격 전가율에 대한 가정을 기반으로 미국의 양자 무역 적자 규모를 해당국으로부터의 수입액으로 나눈 값의 절반을 상호관세율로 상정하는 구조다. 도출식은 공개되자마자 저명한 경제학자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수출과 수입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상호 연동되어 움직이는 상황에서, 도출식은 지나치게 일반화된 논리로 무역 적자와 관세율을 연관시켰다. 나아가, 도출식이 가정하는 주요 파라미터 값(탄력도, 가격 전가도 등)들 역시 이질성이 매우 클 수밖에 없는 국가별 특성, 산업적 특성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호관세 부과의 임의성이 매우 높았다(김종덕, 2025).3
도출식 자체의 모순에 더해,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의 범위도 의아함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후보 시절이나 대통령 재임 시절에 일관되게 표적에 두었던 무역 흑자국들은 주로 중국, 일본, 멕시코, 한국과 같이 대미 흑자 명목 금액이 굉장히 큰 무역 대국들이었다. 하지만 행정명령에 명시된 상호관세 대상국들은 무역 대국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및 저소득국가를 광범위하게 포함했다. 저소득국가들의 경우, 대미 흑자 명목 규모가 작더라도 대미 흑자 규모가 대미 수출액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경우가 많다. 이에 도출식에 따라 라오스(48%)나 미얀마(44%)와 같은 저소득 국가들이 한국(25%)이나 일본(25%)과 같은 무역 대국들에 비해 더 높은 상호관세율 안(案)을 적용받는 경우를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더 낮은 상호관세를 적용 받고자 노력했다. 역으로 미국은 무역 파트너들과의 협상을 통해 본토 투자 유치와 무역 상대국의 무역장벽 완화를 얻어내고자 했다. 협상은 5개월이 지난 9월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 역시도 아직 양국 간의 무역 합의를 합의문 형식으로 확정 짓지 못하여 불확실성을 크게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다자협상보다는 양자협상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우선협상국(한국, 영국, 호주, 인도, 일본)을 상정하여 협상을 진행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전세계 무역장벽 완화에 기여해온 WTO와 같은 다자 체제는 힘을 크게 잃게 되었고, ‘트럼프 라운드’로 표현되는 미국발 신통상 질서가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전방위적 통상질서 재편 노력의 동기는 무엇일까? 물론 굉장히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며 동기를 형성해왔지만, 경제학계는 크게 두 가지 메커니즘에 주목하여 연구가 이루어지고있다. 첫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 및 공화당 정권이 국내정치적 지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역정책을 활용한다는 명제에 기반한 연구다. 두 번째는 미국이 국제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하여 벌이는 전략경쟁의 수단으로 무역정책을 활용한다는 인신하에 이루어지는 연구다. 물론 국내정치적 동기와 대외전략경쟁 역시도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 중에서 상당수는 미국의 對중국·對러시아·對중동 정책을 우선순위로 삼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경제학적 방법론적으로는 두 동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상이하며, 실증적 추정을 위한 이론적 초점도 다르다.
이번 원고는 두 동기에 기반한 경제학 연구를 차례로 소개하고, 향후 연구의 향방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제 2장은 보호무역정책의 국내정치적 결정요인에 초점을 맞추는 이른바 ‘내생적 무역정책 형성(endogenous trade policy formation)’ 담론의 발전 경로와 최신 연구 동향을 다룬다. 제 3장은 무역정책이 국가 간 전략경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을 모형으로 설정하는 연구들을 살펴본다. 제 4장은 향후 연구 동향을 전망하며 결론 짓는다.
2. 보호무역정책의 국내정치적 배경
세계경제는 20세기 중후반을 지나며 무역을 통해 급속도로 상호 연계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무역의 방향과 무역 규모의 결정요인을 분석하는 경제학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무역의 방향과 규모의 주요 결정요인들 중 하나는 무역정책으로, 관세나 무역협정의 변화가 양자(bilateral) 무역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적·실증적 성과가 축적되어왔다. 하지만 다른 정책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무역 정책은 근본적인 내생성을 담보하고 있다. 여기서 내생성이란, 무역 정책은 단순히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국내경제적 상황과 국내정치적 배경을 반영하여 도입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무역 정책을 단순히 외생적인 충격으로 인식해서 분석하기 보다는, 무역 정책이 도입될 당시의 대내 경제적 상황과 국내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연구가 요구되었다.
1) 이론적 분류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을 어떻게 모형화 하는지에 따라, 크게 네 종류의 이론적 논의가 주요 담론으로 자리잡았다. 첫 번째는 중위투표자이론(median voter theory)로 일컬어지는 담론으로, 각국의 생산요소부존(factor endowment)과 비교우위, 그리고 국내불평등 간의 상호작용에 집중한다. 중위투표자이론은 헥셔-올린 무역 모형을 기반으로 각국의 중위투표자가 보호무역정책(혹은 무역자유화정책)에 대해서 우호적일지 여부를 이론적으로 도출한다. 이론적 도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리는 스톨퍼-사무엘슨 정리로, 무역 자유화 혹은 보호무역에 따라서 각 요소 소유자들의 후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파악하는 비교정학이 핵심적인 통찰이다.
노동과 자본을 생산요소로 상정하고 단순히 2국가-2요소-2산업 모형을 고려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반화가 가능하다. 노동부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에 비교우위가 있기 때문에, 노동 소유자(노동자)들은 무역자유화로 인해 후생이 증대되고 보호무역으로 인해 후생이 감소한다. 반면 노동부국의 자본소유자는 보호무역으로 인해 후생이 증대하게 되어 보호무역정책을 지지한다. 자본부국은 자본집약적 산업에 비교우위가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무역자유화로 인해 후생 증대를 경험하는 반면 노동자들은 보호무역으로 인해 후생 증대를 경험한다. 이러한 이론적 도출을 통해 중위투표자이론은 왜 노동부국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무역 정책이 관찰될 수 있고, 왜 자본부국에서 보호무역적인 무역정책이 도입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노동부국과 자본부국 모두 중위투표자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Mayer(1984)는 이와 같은 논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했으며, Dutt and Mitra(2002, 2006)은 이론에 기반한 실증 분석 모형을 제시했다.4
두 번째는 특정요소모형(specific-factor model)으로, 각 유권자의 산업소속이 보호무역정책에 대한 각자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임을 제안하는 이론이다. 앞에서 소개한 중위투표자이론은 헥셔-올린 모형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장기(long-run) 모형이다. 헥셔-올린 모형은 산업부문간의 생산요소의 이동을 허용하는데, 이는 장기 환경에서만 허용될 수 있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대부분의 생산요소는 특정 산업에 고정되어 있으며, 노동자들 역시도 특정 산업에 특화된 상태로 고용되어 있다. 단기적으로는 생산요소의 산업간 이동이 쉽지 않은 특징을 모형에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특정요소모형은 중위투표자이론이 놓칠 수 있는 통찰을 보완하기 위해 실증분석에서 많이 활용된다.
특정요소모형 역시 끊임없는 이론의 개선을 거치며 다산업(multi-sector) 모형으로 확장되어 왔다. 특정요소모형을 통해 무역정책이 개개인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논함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산업소속은 크게 세 가지로 단순화할 수 있다. 수출산업에 소속되어 단기적으로는 산업 이동이 어려운 노동자들, 수입산업에 소속되어 단기적으로는 산업 이동이 어려운 노동자들, 그리고 산업 간 이동이 단기적으로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세 가지 집단에 해당한다. 앞의 두 집단의 경우 노동이 특정 산업에 특화된 특정요소(specific-factor)인 경우이고, 마지막 세 번째 집단에서의 노동은 산업 간 이동 가능한(mobile factor) 경우다. 산업 간 이동이 단기에도 가능한 노동자들의 경우, 통상 당국이 무역을 개방하거나 보호무역을 실시하는지의 여부에 후생이 영향받지 않는다. 하지만 수출산업에 고용된 특정요소 노동자들은 무역 자유화에 의해 후생 증대를 경험하고, 보호무역에 의해서는 후생 감소를 경험한다. 반대로 수입산업에 고용된 특정요소 노동자들은 보호무역을 통해 후생 증대를 경험하기 때문에 보후무역정책을 지지한다. 이러한 통찰을 경제학 모형을 통해 제시한 연구들로는 Samuelson(1971), Mayer(1974) 등이 있고, Mayda and Rodrik(2005)는 유권자단위에서 실증적인 추정이 가능하도록 분석의 틀을 제시했다.
세 번째 이론적 담론은 로비(lobby)를 통한 무역정책 형성에 집중하는 연구들로, 로비 관련한 자료가 법률을 통해 양성화된 미국의 사례를 설명할 때 주로 활용된다. 미국은 사회내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산업단체, 지역단체, 계층단체, 노동단체, 종교단체 등의 이익집단들이 의회 구성원들에게 입법 로비를 하는 것이 합법화 되어있다. 입법 로비활동을 위한 금전적 기여를 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있고, LobbyView와 같은 로비 관련 포털에서 연구자들은 이를 열람할 수 있다. 무역정책이나 산업정책 입안에 있어서 당국, 정치인, 경제인, 노동자들이 이익단체의 로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미국의 상황을 게임이론으로 모형화하여 연구한 논문들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제시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부터는 로비기여액과 로비 대상 분야, 그리고 로비 대상 정치인에 대한 정보를 통해 실증분석이 활발해졌다.
가장 잘 알려진 연구는 제목(‘protection for sale’) 자체가 해당 연구담론의 대명사격으로 널리 일컬어지는 Grossman and Helpman(1994)의 연구다. 각 산업은 로비 조직을 결성할 수 있으며, 로비 조직이 결성될 경우 정부를 상대로 캠패인 로비 기여(campaign contribution)을 제공한다. 통상당국은 캠피인 로비 기여액과 사회후생 간의 선형 합(linear combination)을 극대화하는 목적함수를 가지며, 여기서 이 목적함수는 로비 기여액과 사회후생 사이의 가중치에 따라 주안점이 달라질 수 있다. 이론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로비가 더 조직된 산업에 대해서는 무역장벽이 더 높고, 로비가 덜 조직된 산업에 대해서는 무역장벽이 낮다는 통찰을 이끌어낸다.
네 번째 이론적 담론은 정치지지함수(political support function) 담론으로, 정책 당국이 사회 구성원들의 후생을 집계하는 방식에 따라 정책 입안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원리에 집중하는 연구들이다. 즉, 여러 산업이나 사회집단들이 이질적으로 직면하는 후생효과들 중에, 당국이 어느 곳에 많은 가중치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무역정책 입안 방향이 달라지는 현상에 집중한다. 기술적으로는 앞에서 소개한 특정요소접근법을 차용하여, 특정요소 소유자(자본가나 지주)의 후생과 노동자의 후생에 어떻게 가중치를 두는지에 따라 당국의 최적화 결과가 달라지는 비교정학을 통해 이론을 전개한다. 당국의 지도자가 친노동 성향인지, 친자본 성향인지에 따라 다른 균형이 형성되므로 집권세력의 이념성향이 정책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정치지지함수 접근법이 널리 사용된다. Van Long and Vousden(1991)의 연구와 Hillman(2013)의 연구에서 이론적으로 정교화되었다.
2) 실증 분석과 최근 연구 동향
국가간(cross-country) 패널 자료와 유권자 단위의 설문 자료가 발전하면서, 2000년대 초를 전후하여 앞의 이론적 담론들을 실증적으로 검증하려는 경제학자들의 노력이 본격화되었다. 먼저 국가별 자본 부존, 불평등 지수, 관세율이 패널 자료로 구성이 가능해지면서 중위투표자모형과 정치지지함수 접근법에 대한 실증적 추정이 가능해졌다. 중위투표자모형의 이론적 도출을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실증적 가설을 도출할 수 있다. 자본 부국에서는 국내 불평등의 증가가 높은 무역장벽을 초래하고, 반대로 노동 부국에서는 국내 불평등의 증가가 더 낮은 무역장벽을 초래한다. 정치지지함수 접근법의 경우, 집권세력 (혹은 최대 정치세력)의 이념성향에 따라 무역 정책 입안의 결과가 실제로 달라지는지를 실증적으로 추정함에 통해 현실설명력을 검증할 수 있다. 즉, 집권세력의 친노동 성향이 강해진다면 자본 부국에서는 더 높은 무역장벽 입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은 반면에 노동 부국에서는 더 낮은 무역장벽 입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은지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두 모형의 이론적 가설을 독립적으로 검증하는 연구들이 먼저 제시 되던 와중에, Dutt and Mitra(2006)은 두 가설을 동시에 검증한다. 구조적으로 종속변수인 관세율과 핵심 독립변수인 자본노동비율 간의 내생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저자들은 저축률과 인구증가율을 활용한 도구변수를 구축한다. Dutt and Mitra(2006)은 중위투표자모형과 정치지지함수 접근법 모두 현실설명력이 강한 이론적 예측임을 확인하며 국내 불평등과 집권세력의 이념성향 모두 내생적 무역정책 형성의 핵심 채널임을 강조한다. 김남석 외(2024)는 분석 기간을 2019년까지로 확장하여 Dutt and Mitra(2006)의 추정을 재실시하였는데, 중위투표자모형의 이론적 예측은 지지된 반면에, 정치지지함수 접근법의 이론적 예측은 실증적으로 지지되지 않았다.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중국의 급성장으로 인한 이른바 ‘China shock’의 정치경제적 영향을 추정하고자 선거구(constituency) 단위 분석이 2015년 이후 많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연구는 Autor et al.(2020)의 미국 선거를 기반으로 한 연구다. 저자들은 본인들이 구축한 미국내 지역별 대중국 수입 침투(import penetration) 변수를 활용하여, 지역별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관내 노동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측정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중국 수입 침투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컸음을 도구변수 추정을 통해 확인한다. 이는 실제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국제무역을 활용한 선거 어젠다가 실제로 효과가 있었음을 확인하는 결과로, 학계는 물론 정계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Autor et al.(2020)의 연구를 다른 나라의 선거 사례들에 적용한 연구들이 최근 많이 축적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들이 주로 유럽이나 북미 지역 선거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An et al.(forthcoming)은 한국의 선거에 관하여 연구를 실시했다. 저자들은 240개 시군구 행정구역을 대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무역 확대가 해당 지역의 보수정당 득표율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실증적으로 추정한다. Autor et al.(2020)과의 차이점은, 한국 경제는 굉장히 수출의존적 경제이기 때문에 수입침투도(import penetration)과 수출침투도(export expansion)을 함께 수량화하여 독립변수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침투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출침투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그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낮았음을 보인다.
내생적 무역정책 형성 담론의 미시적 기초를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각 유권자 개개인의 무역정책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요인을 추정해내야 한다. 앞에서 소개한 중위투표자이론의 통찰에 따르면 각 개인의 요소부존이 모국의 비교우위와 상호작용하며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결정한다. 반면 특정요소접근법에 따르면 개개인의 산업 소속이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결정한다. Mayda and Rodrik(2005)는 다국가 설문 자료를 통해 두 채널을 모두 검정한 연구다. 개개인의 인적자본(교육 수준)과 모국의 소득수준 간의 교차항을 도입하여 중위투표자이론의 실효성을 검증하고, 개개인의 산업 소속 정보를 이용한 더미변수(비교우위/열위 산업 소속 여부에 관한)들을 도입하여 특정요소접근법의 현실 설명력을 검증한다. 저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중위투표자이론의 현실 설명력이 높게 지지되었다. 동시에, 수입경쟁산업에 노출된 응답자들이 보호무역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관찰됨을 확인하여, 특정요소 접근법의 이론적 예측도 부분적으로 지지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 Mayda and Rodrik(2005)의 연구를 방법론적으로 개선함과 동시에, 여러 국가 유권자들이 아닌 한 국가의 유권자들의 성향을 더 깊게 연구하는 논문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Karakas et al. (2021)은 스웨덴 유권자들을 상대로한 설문 자료를 활용하며, 응답자들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종속변수)과 정치적 이데올로기 성향(독립변수) 간의 내생성을 해결하기 위해 도구변수를 도입했다. 나아가 스웨덴의 민족주의성향 신흥 우파정당인 Swedish Democrats의 급성장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기존에 다른 정당을 지지하다가 Swedish Democrats로의 지지로 변경한 유권자들이 세계화(무역, 이민)에 대해서 어떠한 의견을 갖는 유권자들인지를 연구했다. Kim(2025)는 기존의 유권자 단위 연구들이 북미/유럽 등 선진국에 집중되어있는 상황에서, 최근 무역개방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태국과 필리핀 유권자들의 사례에 주목한다. 실제로 정치경제 이론들이 예측하는 노동부국에서의 현상을 확인함과 동시에, 인접 아시아태평양 국가들(한국, 일본, 중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의 유권자들이 갖는 보호무역주의 성향과 비교분석을 실시한다.
3. 국가 간 전략경쟁과 보호무역정책
(1) 교역조건의 동학
앞에서 살펴본 보호무역정책의 국내정치적 동기에 대한 연구와 함께, 국가 간 전략경쟁이나 상호작용이 보호무역정책의 도입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함께 발전해왔다. 국내정치적 동기에 집중하는 앞의 연구들은 재화의 국제가격을 외생적으로 주어진 정보로 간주하고 국내 정치 지형을 모형화한다. 하지만 관세와 같은 무역정책을 통해 국가 간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면, 재화의 국제가격은 더이상 외생적인 정보가 아니다. 특히 미-중 무역 경쟁과 같이 당사국이 시장지배력이 충분히 큰 국가들인 경우, 각국이 협상전략이나 대응전략을 어떻게 가져가는지에 따라 국제가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영향을 받는 재화의 범위가 방대한 미-중 무역 경쟁뿐만 아니라, 코로나 정국에서의 호주-중국 무역 갈등, 한국-일본 간의 반도체 중간재 관련 갈등, 러-우 전쟁 국면에서의 미국의 러시아 강력 제재 등 역시도 특정 재화군에 대해서는 국제가격을 크게 왜곡시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보호무역정책의 국내정치적 배경을 모형화한 앞 장의 연구들에 국제적 일반균형 개념을 도입한 논문들이 1990년대 중후반 제시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연구들은 Bagwell and Staiger(1999, 2002, 2011)과 ‘Trade Wars and Trade Talks’로 잘 알려진 Grossman and Helpman(1995a), 그리고 무역 협정의 정치학을 다룬 Grossman and Helpman(1995b) 등이다. 상대국의 교섭 전략에 따라 국제 상대가격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통상 당국은 자국 산업 보호 및 지지기반 확충을 위해 전략적으로 무역정책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게임이론 기반 국제무역 모형을 통해 구현하여, 국가 간 상호작용이 국내정치적 제약과 교역조건(terms of trade) 제약 하에 어떻게 균형을 찾아가는지를 연구한다.
교역조건의 동학이 모형에 포함됨에 따라 각국이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교역 상대국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분석할 수 있다. 관련한 연구들이 위의 모형을 통해 많이 확장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강대국 간의 전략경쟁이 노골화되며 발생하는 공급망 분절화(supply chain fragmentation)와 교역의 지정학적 진영화(geopolitical alignment)를 직접적으로 모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교역조건의 동학을 표현하는 위의 모형만으로는 무역정책을 헤게모니 경쟁 및 진영화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다음 소절은 최근 한국의 연구기관들이 공동개최한 Econometric Society World Congress 2025에서 이 분야 대가인 Gene Grossman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Matteo Maggiori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 Isabelle Mejean 시앙스포 교수가 직접 발표한 세 편의 논문을 소개한다. 세 편의 논문 모두 무역을 통한 국가 간 전략경쟁을 직접적으로 모형화하는 새로운 시도를 단행했다.
(2) 최근 연구 동향: 분절화, 진영화, 경제적 강압(coercion)
한-일 반도체 소재 무역 분쟁, 요소수 사태, 글로벌 판데믹, 그리고 러-우 전쟁 및 중동 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을 겪으며 ‘경제안보’는 이제 더이상 특정 정치 진영만의 어젠다가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윤석열 행정부 기간에 국가적 어젠다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경제안보 개념은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에도 국정과제에 명시적으로 포함되며 그 중요성이 다시 환기되었다. 이는 비단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이나 패권 경쟁국 중국은 물론이고, 경제규모나 소득수준이 다양한 신흥국가그룹, 중견국그룹, 다자기구 모두 경제안보의 개념을 정책적 우선순위로 여기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출범한 다자협의체인 IPEF도 4개 필라 중 하나인 공급망 필라에서 다자간 경제안보 분야 협력을 명시하기도 했다.
경제안보의 개념이 국제경제에서 주류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형성이 더이상 비용 최소화(cost minimization)의 원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위험 최소화(risk minimization)의 원리의 중요성이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중간재 조달 비용이 기존보다 더 지출된다 하더라도,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더 자유롭게 조달받을 수 있다면 추가적인 비용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Clayton et al.(2024)는 경제안보 노선으로부터의 이익과 경제통합 노선으로부터의 이익 간의 상충관계(trade off)를 이론적으로 연구한다. 저자들은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들이 경제통합으로부터의 이익을 무기화하여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는 환경을 상정한다. 강대국들이 이렇게 통상을 무기화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각국이 경제통합과 경제안보 간의 균형을 도모한다면, 자연스레 분절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도출한다. 저자들은 각국이 헤게모니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할 때 오히려 ‘분절화의 굴레’에 빠지게 되어 막대한 후생 손실을 입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통상 당국이 대미/대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나름의 최적 전략을 구사한다 하더라도, 다른 국가들(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제 3의 국가)과의 조율된 대응을 구사하지 않고 각국이 개별적인 전략을 펼칠 경우 비효율성이 증폭된 분절화가 나타날 수 있음을 예측한 것이다.
Becko et al.(2025)의 연구는 미국과 중국과 같은 헤게모니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적 후생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지정학적 진영화(geopolitical alignment)도 목적함수에 포함시켰을 때의 최적 관세(optimal tariff)를 도출한다. 저자들의 모형에 따르면 단극체제(unipolar)에서는 패권국이 무역협정을 통해 동맹국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상황이 연출되지만, 지금과 같은 양극체제(bipolar)에서는 두 강대국이 각자의 영향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된다. 교역조건이 최적 관세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에 더해 지정학적 고려 요인도 추가 된 경우, 전통적인 최적관세에 비해 높은 수준의 최적관세가 형성될 수 있음을 저자들은 이론적으로 증명한다. 이를 통해 2025년의 상호관세 정국이 이론적으로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Mayer et al.(2025)는 미-중 무역 갈등에 이은 디커플링 시나리오를 분석하기 위해 무역 모형과 지정학적 분쟁 모형을 결합한 새로운 모형을 제시한다. 모형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미국의 대중 의존도 증가는 미-중 간의 지정학적 분쟁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단행한다면, 지정학적 분쟁의 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는 있음을 저자들은 확인한다. 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안보 딜레마가 발생함을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는데, 무역 의존도가 협상에서의 협상력을 결정하기 때문에 미국은 딜레마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즉, 디커플링은 지정학적 분쟁의 비용을 감소시켜 평화 유지를 위해 필요한 외교적 양보의 양을 줄여줄 수는 있으나, 역설적으로 디커플링으로 인해 낮아진 협상력은 상대의 절제 유인을 약화시킨다. 결국 분쟁 상대가 절제의 유인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면, 의도치 않게 갈등이 디커플링 이전보다 더 증폭될 위험이 있음을 저자들은 지적한다.
4. 연구 향방 전망
지금까지 보호무역정책의 동기에 대한 연구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국내정치 환경에서 유권자, 산업계, 정책입안자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연구를 제 2장에서 살펴보았고, 제 3장에서는 국가 간 전략경쟁의 일환으로 무역정책을 해석하는 연구들을 논했다.
국내정치적 배경을 유권자 단위의 미시적 기초에서 부터 설계함과 동시에, 국가 간 전략경쟁의 요소도 담아내는 거대 모형은 나름의 장점도 있겠으나 효율적이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거대 모형은 너무나 많은 가정을 전제로 해야함과 동시에 실증 분석과의 상호 호응도 쉽지 않고, 분석 범위가 너무 넓어 유의미한 경제학적 통찰을 새롭게 포착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두 부류의 연구가 다소 병렬적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연구자들이 감안해야하는 사실은, 국가간 전략 경쟁도 결국에는 국내정치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 경쟁이 단순히 헤게모니 획득 그 자체가 제공하는 유인 때문일 것인가? 4년에 한 번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미국의 경우, 지난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모두 중국에 대한 전략 물자 수출 통제를 적극적으로 입안해왔다. 두 행정부 모두 미국의 산업 헤게모니 유지 그 자체에 집중했다기보다는, 산업 헤게모니 유지를 통해 본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에 굴복하지 않는 지도자 이미지에 더해, 산업 헤게모니 유지를 통한 미국 본토 내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 창출이 선거에서 얼마나 요긴하게 쓰일 성과인지 두 행정부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행정부 역시, 장기 집권을 국내정치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대미 전략경쟁을 활용할 유인이 충분함은 마찬가지다. 미-중 양국의 리더십의 대내 정당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양국 간의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미-중 간의 헤게모니 경쟁까지 살펴보지 않고 한국의 사례만 살펴보아도, 대외전략이 국내정치적 동기에 기반함은 비교적 자명하다. 진보 정권이 지지자 결집을 위해 대일본 발언 수위를 강화한다던가, 보수 정권이 지지자 결집을 위해 대북/대중 메세지의 수위를 강화하는 것을 우리는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목격해왔다.
이에 저자는, 결국 장기적으로는 ‘내생적 무역정책 형성’을 넘어 ‘내생적 대외정책 형성’ 담론으로 연구 확장의 큰 흐름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직은 외교전략의 국내정치적 동기를 직접적으로 이을 수 있는 이론적 채널이 무역-국내정치 간의 관계 만큼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위와 같은 연구 흐름이 크게 발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통상정책과 외교정책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최근의 흐름과 경제학 연구가 발맞추어 발전하자면, 결국 이에 부응하는 이론적 혁신이 요구된다.
사실 한국은 공교롭게도 상호관세 정국에서 정권교체를 경험했기 때문에, 통상정책/외교정책/국내정치 간의 상호작용에 최근 가장 극명하게 노출되었던 국가들 중 하나다. 저출산 및 인구구조 변화로 인하여 갈수록 대외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한국경제는 강대국들의 경제적 강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통상 당국이 상대국의 경제적 강압의 의도와 배경을 정확히 파악하여 국익을 수호할 수 있도록 한국의 경제학 연구자들이 지혜를 모아 ‘내생적 무역정책 형성’ 담론을 ‘내생적 대외정책 형성’ 담론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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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omestic Politics or Strategic Competition? The Future of Political Economy Research on Protectionism
This study examines two strands of research on the motivations behind protectionist trade policy and discusses future directions for the field. The first focuses on domestic political drivers of protectionism, commonly referred to as the literature on endogenous trade policy formation. The second emphasizes the role of trade policy as an instrument of strategic competition among states. While these strands have developed largely in parallel, I argue that their trajectories may converge over time. As the boundaries between trade policy and foreign policy become increasingly blurred, and as external economic strategies remain deeply embedded in domestic political contexts, future research will need to move toward what may be called an “endogenous diplomatic policy formation” framework.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대양주팀 팀장 ↩
- 미국 백악관의 4월 2일 행정명령(Regulating Imports with a Reciprocal Tariff to Rectify Trade Practices that Contribute to Large and Persistent Annual United States Goods Trade Deficits)의 Annex 1 ↩
- 김종덕(2025), 「트럼프 상호관세 도출식(formula)의 평가와 시사점」, KIEP 세계경제 포커스 25-15,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 노동부국/자본부국-노동/자본-노동집약산업/자본집약산업 ↩